흔적을 남기며 걷는 삶의 방식에 대하여
길을 걸을 때 개미가 보이면 밟을까 봐 피해 다닌다. 신앙적인 이유가 아니라 비록 미물일지라도 어쩐지 개미는 신령한 느낌이 들어서다. 해드림출판사 예전 사무실이 있던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는 오류동에서 광명으로 이어지는 죽은 철길이 있었다. 열차가 안 다니니 이 철길은 사람들의 산책로였다. 어느 날, 철로 아래 깔린 자갈 위를 개미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인간에게는 작은 돌멩이일 뿐이지만, 끝없이 깔린 자갈을 헤치고 어딘가를 찾아가는 개미가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숱한 장애물을 헤치며 목적지를 찾아가는 개미에게서 나 자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였다. 아무리 자갈이 첩첩산중처럼 다가와도 개미는 절대 길을 잃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 몸집의 개미는 인간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그 작디작은 생물들이 이룩한 질서와 공동체의 구조, 그리고 ‘길을 잃지 않는 능력’은 종종 인간의 이성과 과학의 언저리를 건드린다.
개미는 복잡한 지형에서도 헤매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일직선으로 걷는다. 그러다 무언가를 발견하면 다시 일직선으로 되돌아간다. 혼자 걷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 발아래에는 보이지 않는 ‘지도’가 있다. 그 지도는 잉크로 그린 것도, 디지털 신호로 된 것도 아니다. 바로 개미가 자기 몸에서 분비한 페로몬(pheromone)이라는 화학물질로 만든 길이다.
개미가 걷는 길은 단순한 이동의 경로가 아니다. 그 길은 ‘공유된 기억’이고, ‘지속되는 흔적’이다. 일개미가 먹이를 찾아 나설 때, 그 발자국마다 페로몬이 남겨진다. 그 흔적을 따라 다른 개미들도 움직인다. 그 길을 걷는 개미는 다시 자신의 페로몬을 덧칠해 강화한다. 길이 반복될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더 많은 개미가 그 길을 따른다. 누군가가 앞서 지나간 길에 자신의 존재를 보태며, 마침내는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가 완성된다. 이 네트워크는 지도나 말이 필요 없다. 몸으로 말하고 발로 기록하며 향기로 소통하는 생물들의 집단지성이다.
놀라운 건, 개미들은 수학적 계산이나 논리적 사고 없이도 이 시스템을 완벽하게 작동시킨다는 점이다.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후각의 기억으로 판단한다. 마치 정겨운 집 냄새를 기억하는 어린아이처럼 개미는 향기로 방향을 찾는다. 어떤 개미는 페로몬의 농도가 짙은 쪽으로 움직이고 어떤 개미는 희미해진 자취를 따라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이들의 전략은 인간이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개미는 이타적인 생명체다. 먹이를 발견한 순간 혼자 먹지 않고 곧장 다시 집으로 향해 그 사실을 알린다. 돌아가는 길도, 이미 지나온 페로몬 길을 따라가기에 헤맬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개미가 길을 잃지 않는 이유는 혼자 걷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걸은 누군가의 흔적을 믿고 따르며, 자신 또한 흔적을 남겨 다른 이를 돕는다. 개미는 누구보다 협력적이고 기억하는 존재다.
인간은 정보를 말과 글로 기록한다. 그러나 개미는 침묵 속에서도 흔적을 남긴다. 누가 더 진보적이고 누가 더 원시적인가의 문제는 아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생존의 언어를 만들어 왔을 뿐이다. 다만 개미의 방식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은 누군가에게 길이 되는 삶을 살고 있는가?”
현대는 경쟁의 시대라 한다. 서로 앞서기 위해 등 떠밀며 살아간다. 그러나 진정한 길은 뒤에서 따라오는 누군가를 위해 남기는 흔적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누군가의 본보기가 되었을 때, 우리가 걸어온 길이 ‘사라지는 길’이 아닌 ‘이어지는 길’이 될 때, 그 길은 비로소 의미가 있다. 개미처럼 말이다.
개미는 작다. 그러나 매일 성실하게 걷는다. 먹이를 찾고 식구를 돕고 길을 만든다. 단 한 번도 자기만의 안락함을 위해 길을 닫지 않는다. 그러니 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개미는 길을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의 흔적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도 묻자. 우리는 서로를 위한 향기로운 흔적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 뒤에 오는 이는 스스로 길을 찾도록 내버려 두는가? 삶이라는 이 복잡한 미로 속에서 누군가에게 길이 되어주는 일. 그것이 가장 인간적인 행동인지도 모른다.
이승훈
•수필가/시인
•한국문인협회 회원
•부정기 간행 『테마수필』 발행인
•계간 『출판과 문학』 발행인
•해드림출판사 대표
시 집 : 『우리는 누구에게 절박한 무엇이 된다』(2022)
실용서 :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의 글쓰기 분석』(2025)
산문집 : 『외삼촌의 편지』(2016)『어머니 당신이 있어 살았습니다』(2022)
수필집 : 『가족별곡』(2010) 『도토리의 꿈』(2023)
타로 : 『더 단단해지는 아픔』(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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