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찻잔 _ 김 용 림
우리 모임에 총무를 맡은 친구가 2025년 11월 마지막 월요일에 경과보고를 했다. 우리는 1966년도에 광주여고를 졸업한지 30년 후 서울에서 10명이 만나 매달 모임을 가져왔다. 그로부터 또 30년 동안 만나왔으니 60년지기 여고동창 친구들이다.
이제 2년 후면 8순이다. 10명 중에 벌써 요양병원에 간 친구가 생겼고 남편 잃은 친구, 치매 초기가 찾아와 남편이 모임 장소인 식당 앞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렸다가 데려가는 친구, 뇌수술 후 기저귀 차고 다니는 친구, 심장수술 허리 무릎 수술로 걸음걸이가 불편해진 친구, 혈압 당뇨 등 기저질환이 있어도 그나마 멀쩡하다는 친구는 단 3명뿐이다.
건강 상태가 70대엔 해마다 다르고 80대엔 달마다 다르다고 한다. 70대 말 우리들에게도 더 이상 모임을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친 것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매달 정상적인 모임이 어려워질 것 같아서 해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매우 안타깝고 서운한 일이지만 뜻을 같이했다.
총무가, 오늘은 제2차 졸업식이라고 선언했다. 숙연한 분위기 속에서도 서로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식당을 나서니 이날 역시 예전처럼 문 앞에 백발인 친구 남편이 아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분과도 사실상 마지막이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악수하고 끌어안고 손을 흔들며 기약 없이 돌아섰다.
웃으며 “우리 모두 단체 카톡방에서 나가지는 말자, 서로의 근황을 올리며 생존 신고는 하고 살자구,” 했으나 마음으로는 울었다.
고인이 된 김동길 박사가 “사람이 독약은 먹고 속일 수 있어도 나이를 먹고는 절대 속일 수 없다.”라고 하셨다. 다. 30년 세월 동안 매달 만나서 얘기꺼리가 자식들 입시 공부부터 시작하여, 군 입대, 취직, 결혼, 손주 들 얘기까지 나오니 우리는 벌써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식사 후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마지막 찻잔을 들고 해체식을 가지는 기분은 마치 이 세상을 하직하는 것처럼 무거웠다.
우리는 앞으로 몇 살까지 살 수 있는 걸까,
며칠 전에 104살 되신 남편 친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장례식장에 온 손님들은 호상이라고 하지만 정성을 다해 모셔오던 며느리는 눈이 퉁퉁 붓게 울고 있었다. 주변에 100세 이상 된 부모님이 여러분 계신다. 100세 시대, 라는 말이 정말 실감 난다.
하루는 길고 10년은 짧고 100년은 순간이더라, 라고 눈 감는 순간 뒤돌아본 100년은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2024년 1월 국가 데이터처는 우리나라 남자 평균수명은 86.7세, 여자 평균수명은 90.7세로 우리나라 여자 평균수명이 90세를 넘었다 한다. 9988234로 가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큰 병을 앓는 기간을 빼고 건강히 살 수 있는 수명은 65.5년이라고 한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 18년 정도는 암과 폐렴, 심장과 뇌혈관 질환 등 온갖 질병으로 앓다가 늙어간다고 하니 누구나 노화는 막을 수 없고 노년은 두려움 속에 살아가기 마련이다.
삶이 두려워 사회가 생겼고 죽음이 두려워 종교가 생겼다고 한다. 자고 일어나자마자 우리 인간이 무엇을 압니까? 그저 잠자듯이 데려가 주세요, 하고 죽음 복을 달라고 기도하시던 나의 어머니, 내가 곧 어머니 나이가 되어간다.
어렸을 때 어른들이 “너희도 나이 들어 봐라, 겉만 늙지 마음은 항시 청춘이란다.” 하셨다.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세월은 어느새 소녀들을 할머니로 데려다 놓고 말았다. 친구들아 너도 가고 나도 가는 인생, 이제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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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림
* 1947년 광주 출생
* 한국문협 전통문학 연구위원
* 강남문화원 자문위원
* 강남대모문학회 고문
* 저서 : 수필집 『내 마음의 비상홀』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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