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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선정릉 어진 길목 저잣거리’_이향숙 구의원

기사승인 2025.12.17  16:4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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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년이 해석한 왕릉 앞 골목의 새로운 가능성

   
강남구의회 이향숙 구의원

평소 차량만 오가던 선정릉 앞 골목이 하루 동안 주민과 역사가 만나는 축제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지난 11월 29일,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선정릉 일대 골목에서 열린 ‘선정릉 어진 길목 저잣거리 축제’는 조용했던 골목을 주민과 방문객을 위한 문화의 장으로 전환 시켰고, 가족 단위 방문객과 인근 주민, 관광객들로 골목은 종일 활기를 띠었다.

이번 축제의 제목인 ‘어진 길목 저잣거리’에는 분명한 기획 의도가 담겨 있다. 선정릉은 조선 왕실의 능이 자리한 신성한 공간으로, 상평통보를 기반으로 한 대규모 장시나 경강포구와 같은 상업 중심지와는 입지와 성격이 다르다. 왕릉 주변은 본래 소란스러운 시장이 형성되기보다는, 왕릉 행차와 제례를 위해 이동하던 관리와 수행원, 물자 운송 인력을 지원하는 숙소·음식·물품 공급 중심의 절제된 보조 경제 공간으로 기능해 왔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이번 축제는 선정릉 앞 골목을 ‘시장’이 아닌, 왕의 길을 오가는 이들이 잠시 머물며 쉬고 교류하던 통행로형 저잣거리, 즉 Royal Road Traveler’s Marketplace로 재해석했다. 이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왕릉의 품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지역 골목에 새로운 문화적 활력을 불어넣고자 한 시도였으며, 도시 한복판 세계유산을 품은 강남구만의 문화정책 실험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이번 행사의 가장 큰 의미는 기획의 중심에 청년이 있었다는 점이다. 축제의 콘셉트 제안부터 공간 구성, 프로그램 기획까지 청년 기획자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조선시대 공간 설정을 현대적 체험 콘텐츠로 풀어낸 ‘왕의 연회마당’, ‘왕비의 사랑방’, ‘궁중 아랫전 상점가’, ‘세자의 놀이터’, ‘조선 오락실’ 등 다섯 개의 마당 구성은 청년 특유의 감각과 해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경험은 전통문화 축제의 방향성에 중요한 시사점을 남긴다. 전통은 단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청년의 상상력을 통해 재해석될 때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살아남는다. 청년 기획형 전통문화 축제는 문화 계승과 청년 참여, 골목상권 활성화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다.

의원으로서 축제를 제안하고 함께 준비하며 느낀 점은 분명하다. 행정과 의회의 역할은 모든 것을 직접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과 민간이 역량을 펼칠 수 있도록 판을 깔고 연결하는 데 있다. 이번 ‘어진 길목 저잣거리’는 전통문화와 청년 기획, 골목상권, 지역 공동체가 자연스럽게 맞닿은 정책 실현의 현장이었다.

이번 축제는 완성형이 아니라 시작점이다. 내년에는 청년 기획 참여를 더욱 확대하고, 지역 상권과의 연계를 강화해 선정릉이라는 역사 자산의 맥락을 더욱 깊이 담아낸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소란스러운 시장이 아닌, 절제되고 품격 있는 왕릉 앞 문화 통행로로서의 저잣거리가 지속 가능한 지역 축제로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

하루 동안 열린 ‘선정릉 어진 길목 저잣거리’는 주민들에게 역사적 공간에서 누리는 일상의 축제가 얼마나 특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길목이 앞으로도 청년의 상상력과 지역의 기억이 만나는 문화의 통로로 이어지길 바란다.

강남신문 kangnamnews@hanmail.net

<저작권자 © 강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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